2020년09월19일 24번
[과목 구분 없음] 밑줄 그은‘봉기’ 이후 정부의 대책으로 옳은 것은? [2점]

- ① 흑창을 두었다.
- ② 신해통공을 실시하였다.
- ③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 ④ 전민변정도감을 운영하였다.
(정답률: 71%)
문제 해설
정답> ③
'타오르는 횃불'이라는 제목하에 '유계춘', '백낙신', '박규수'라는 인물의 이름이 나와 있다. 이어 줄거리로 '탐관오리가 판치던 세도 정치 시기, 진주 지역에서는 백낙신의 수탈이 극에 달하여 참다못한 농민들이 몰락 양반 유계춘을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키는데'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봉기'는 조선 철종 13년인 1862년에 일어난 진주 농민 봉기임을 알 수 있다.
진주 농민 봉기가 발생하자 조선 정부는 환재 박규수(1807~1876)를 안핵사로 파견하였으며, 박규수의 건의에 따라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삼정이정청은 삼정의 폐단을 고치기 위하여 임시로 만든 관청이다.
오답 해설>
① 흑창을 둔 것은 고려 태조 원년인 918년의 일이다.
② 신해통공이 실시된 것은 조선 정조 15년인 1791년의 일이다.
④ (고려 시대에) 전민변정도감이 운영된 것은 여러 차례인데 대표적인 것은 공민왕 15년(1366)에 설치된 전민변정도감이다.
'타오르는 횃불'이라는 제목하에 '유계춘', '백낙신', '박규수'라는 인물의 이름이 나와 있다. 이어 줄거리로 '탐관오리가 판치던 세도 정치 시기, 진주 지역에서는 백낙신의 수탈이 극에 달하여 참다못한 농민들이 몰락 양반 유계춘을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키는데'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봉기'는 조선 철종 13년인 1862년에 일어난 진주 농민 봉기임을 알 수 있다.
진주 농민 봉기가 발생하자 조선 정부는 환재 박규수(1807~1876)를 안핵사로 파견하였으며, 박규수의 건의에 따라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삼정이정청은 삼정의 폐단을 고치기 위하여 임시로 만든 관청이다.
오답 해설>
① 흑창을 둔 것은 고려 태조 원년인 918년의 일이다.
② 신해통공이 실시된 것은 조선 정조 15년인 1791년의 일이다.
④ (고려 시대에) 전민변정도감이 운영된 것은 여러 차례인데 대표적인 것은 공민왕 15년(1366)에 설치된 전민변정도감이다.